제6장

강태준의 마음속에서 막 싹트려던 일말의 죄책감이 그녀의 행동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화가 나 손에 힘을 풀고는 그녀를 내버려 둔 채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강예성은 김지연에게 부딪쳐 분풀이를 하려 했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뒤돌아보았다. 친오빠가 그 재수 없는 여자를 끌어안고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에 울화가 치민 그녀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곧바로 윤진아에게 전송했다.

정갈하게 차려진 산해진미가 식탁 위에 가득했고, 서 아주머니가 식사하러 오라고 모두를 불렀다.

강예성이 애타게 기다리던 가재새우가 마침내 식탁에 올랐는데, 하필 김지연의 바로 옆에 놓였다. 그녀는 할아버님이 한눈파는 틈을 타 새우 접시를 자기 앞으로 가져오고는, 원래 자리에 밑반찬 접시 하나를 슬쩍 놓았다.

회장님이 수저를 든 후에야 모두가 식사를 시작했다.

김지연이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그릇 안으로 껍질이 까진 새우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 앉은 시동생 강지환이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강지환은 강 회장님의 늦둥이 아들이었고, 강태준의 부모님은 만혼이었던 탓에 시동생이라는 족보와는 달리 나이는 강태준보다 겨우 네 살 많아 거의 동년배나 마찬가지였다.

강지환은 어릴 적부터 몸이 좋지 않아 오랫동안 해외에서 요양하다 최근에야 귀국했다. 그는 독설가인 강태준과 달리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김지연은 예의 바른 미소로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저 혼자 집을 수 있어요.”

“천만에요. 다 드시면 또 까 드릴게요.”

김지연은 분위기가 어쩐지 이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가 곁눈질로 보니, 강태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감히 먹기만 해봐.’라고 경고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문득 그릇에 담긴 새우가 하나도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먹자니 그렇고, 남기자니 그것도 애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쪽의 움직임을 본 강 할아버지가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그 큰 새우 상자에서 겨우 요만큼만 가져오면 어떡해? 나머지는 어디 갔어?”

서 아주머니는 그 말을 듣고는 급히 준비해 둔 커다란 새우 접시를 들고 와 김지연의 바로 앞에 놓으며 설명했다. “아까는 상에 자리가 너무 없어서 다 못 올렸습니다.”

산처럼 쌓인 가재새우를 본 강예성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오기가 생겨 맞은편으로 젓가락을 뻗었다. 손을 막 들었을 때, 정지미가 젓가락으로 그녀의 손등을 톡 쳤다.

“네 앞에도 있잖니?”

강 회장님은 자기 먹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손자를 흘끗 보더니 또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었다.

“네 아내한테 새우나 까 줘라. 눈치도 없이 그러니 지연이가 대체 네 어디가 좋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김지연은 손에 땀을 쥐었다. 강태준은 새우나 게처럼 껍질 까는 걸 귀찮아해서 평소에는 아예 먹지도 않았다. 집에서도 그녀가 껍질을 까서 그릇에 놓아주어야만 겨우 먹곤 했다.

놀랍게도 그는 새우 한 마리를 집어 들고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지연의 그릇에는 새우가 수북이 쌓였다. 할아버님 덕분에,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강태준이 까준 새우를 먹어보게 되었다.

식사가 반쯤 지났을 때, 강태준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그는 휴지로 손을 닦고는 핸드폰을 들고 거실 테라스로 나갔다.

김지연은 전화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역시나, 약 2분쯤 지났을까. 그가 재킷을 들고 몹시 초조한 얼굴로 집을 나서려 했다.

강 할아버지가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 “밥 먹다 말고 어딜 가려는 게냐?”

말하는 사이 강태준은 이미 신발을 갈아 신고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 문을 열려 하고 있었다.

할아버님의 물음에 그는 감히 태만할 수 없었다.

“친구가 심장병이 도져서요. 잠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지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심장병!

강 할아버지는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어디서 친구 핑계를 대? 분명 그 여자겠지? 내가 경고하는데, 이 강씨 집안의 손주며느리는 딱 하나뿐이야. 그 여자한테서 멀찌감치 떨어져. 무슨 심장병이 맨날 도지는데 아직도 안 죽었어? 아프면 119를 불러야지, 네가 의사 선생님이라도 되냐? 내 보기엔 걔는 머리부터 검사받아야 해. 맨날 유부남한테나 들러붙어 있고 말이야.”

강태준은 마음이 급해 할아버님과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화가 난 회장님도 입맛을 잃었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식탁에 둘러앉은 누구도 감히 수저를 들지 못했다.

“멍청한 놈. 강씨 그룹이 조만간 저놈이랑 그 여자 손에 망하겠어.”

모처럼만의 가족 식사 분위기가 완전히 망가졌다.

강예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불난 데 부채질했다. 김지연의 체면을 깎아내릴 이런 기회를 그녀가 놓칠 리 없었다.

“오빠 오늘 밤 아마 안 돌아올걸요. 윤진아 언니가 귀국한 지 이틀밖에 안 됐으니 할 말이 얼마나 많겠어요. 다들 모르셨죠? 오빠가 어제 언니 환영 파티도 열어줬어요. 3년이나 장거리 연애를 했는데도, 그걸 견뎌내고 아직도 서로 깊이 사랑한다니, 전 정말 감동받았어요.”

그녀는 김지연을 화나게 할 생각에 신이 나 입을 함부로 놀리며 온갖 말을 MSG 치듯 보태 설명했다.

정지미가 옆에서 말려도 소용없었다.

회장님이 수저를 내던지자 숨결마저 거칠어졌다. 그는 강예성을 가리키며 호통쳤다.

“너도 그 여자랑 어울리지 마! 당분간 외출 금지야. 집에서 말버릇이나 제대로 배워.”

그제야 강예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식사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김지연은 강태준이 없는 틈을 타 몰래 빠져나가려 했다. 그녀의 짐은 아직 유수현의 차에 있었다. 막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정지미가 그녀를 붙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지미는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라 말투도 다정했다.

김지연은 이렇게 좋은 시어머니에게서 어떻게 강태준처럼 냉정하고 무정한 아들과 강예성처럼 제멋대로인 딸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부 사이는 평소 교류가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갈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지미는 청원동 빌라에 사는 젊은 부부의 생활을 방해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다정함에 김지연은 조금 어쩔 줄을 몰랐다.

“지연아, 오늘 밤은 자고 가렴. 엄마가 지난번에 쇼핑하다가 너랑 예성이 주려고 잠옷을 하나씩 샀는데, 이따가 가져다줄 테니 한번 입어보렴.”

“감사합니다, 어머님.”

선물 이야기가 나오자 김지연은 차에 있던, 강태준이 준 루비 목걸이가 생각났다. 그녀는 정지미가 붉은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 생색을 냈다.

“어머님, 이건 태준 씨가 다음 시즌에 출시할 신상품인데, 어머님 분위기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정지미의 눈이 반짝 빛나며 얼굴에惊喜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녀는 한눈에 목걸이를 마음에 들어 했다.

“이 펜던트 스타일은 강씨 그룹의 기존 디자인이랑은 좀 다른데, 훨씬 더 멋지구나.”

김지연은 멋쩍게 웃었다. “태준 씨가 해외에서 새로 스카우트해 온 디자이너예요.”

정지미는 아무것도 모른 채 목걸이를 들고 연신 칭찬하며, 그 펜던트 디자이너가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褒め称えた。

밤이 되어 방으로 돌아온 김지연은 핸드폰의 생리 주기 앱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생리가 2주 넘게 늦어지고 있었는데, 그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랫배를 만지며 불안한 마음을 느꼈다.

윤진아가 보낸 임신 확인서가 떠오르자, 마음속 아주 작은 기대감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아기가 생긴들 무슨 소용이람. 그는 조금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직 윤진아가 낳을 아이만을 기다릴 테니까.

강태준은 오늘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김지연은 마음이 복잡해져 혼자 옥상 테라스로 올라가 바람을 쐬었다.

북쪽 지방 5월의 밤은 아직少し肌寒かった。 김지연은 몸에 걸친 셔츠를 여몄다.

밤은 장막처럼 드리워졌고, 하늘에는 조각달이 걸려 있었다. 별들은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고요한 분위기는 그녀에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그 기이한 교통사고는 아직까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경찰이 내린 결론은 브레이크 고장이었지만, 김지연은 사건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굳게 믿었다.

어머니가 사고 당시에 몰았던 차는 뽑은 지 얼마 안 된 새 차였다. 인위적인 파손이 아니라면 그런 초보적인 결함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김지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열쇠로 문을 잠그는 소리가 그녀의 상념을 깨뜨렸다. 뒤를 돌아보니 강예성이 손에 열쇠를 흔들며 그녀를 향해 얄밉게 웃고 있었다.

순간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테라스 문을 밀어보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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